관리자,
2021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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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리사가 될 것인가? 06
박진호, 특허법인 OO 파트너
약력
15 제52회 변리사 시험 합격
16 서울대학교 응용생물화학부 졸업
16~17 김앤장 법률사무소
17~19 OO 사무소
19~ 특허법인 OO 파트너
15, 17~ 한빛지적소유권센터 상표법 전임강사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52기 변리사다. 한빛 학원에서 상표법 강의를 한다. 그 외에는 다른 변리사들과 같다. 출원하고, OA하고, 심판/소송하고, 고객 만난다. 현재 특허법인 OO 파트너다.
어쩌다 변리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이공계는 한 번씩 대학원을 생각하지 않나. 특히 남자는 군대 이슈가 있어서 대학원을 한 번씩 고려한다. 하지만 내 손이 X손인 건지 실험에 소질이 없었다. 실험기구를 쥔 손이 달달 떨리더라. 그렇다고 계속해서 학문을 하기에는 스스로 흥미도 없고 능력도 없어, 전공과의 인연은 졸업 실험을 끝으로 내려놓았다.
학기를 마치고 미뤄두었던 군대에 갔다. 그때 진로를 다시 고민해봤다. 취업 준비를 하기엔 당장 외부활동 경력이나 스펙이 준비된 것도 아니었고, 조직생활/사내정치 등 여러 요소가 나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고시를 생각했다.
학교 선배가 이미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쉽게 조언을 얻을 수 있었고 시험도 법 외에도 자연과학이 나온다고 해서 진입장벽도 비교적 낮아 보여서, 변리사 시험을 선택했다.
수험생활은 어땠나요?
이렇게 긴 호흡의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나. 스터디원들과 모여서 같이 공부했다. 다 같이 무언가를 이루려고 으쌰으쌰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스터디에는 타 시험 수험생도 있었다. 모두 같은 시험을 준비하다 보면 진도나 실력 차이가 날 수도 있고,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져서 사이가 소원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어느 시험이든 아침 일찍 와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하고, 글 쓰는 건 같지 않나. 그때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길을 가고 있지만, 그때의 기억은 정말 즐거웠다. 점심 먹고 나서 학교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도 하고, 간식 사 들고 소풍도 갔다.
수험 기간에는 특허법보다는 상표법이나 디자인보호법이 좀 더 흥미로웠다. 특허에 비해, 상표나 디자인은 눈에 보이고, 세상에 직접 관여하는 느낌이 들었다. GS 풀 때도 사실 특허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상표는 사례 쓰는 게 재밌었다. 판례도 특허보다 상표가 이해가 잘 되더라.
다행히 기득으로 붙었다. 운이 좋았다. 유기화학에서 우연히 봐뒀던 문제가 나왔다. 답안 작성 시작하자마자 그 문제부터 풀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 복학하고 교양수업 출석을 부르는 와중에 합격 문구를 봤다. 수업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계속 카톡하고, 쉬는 시간에 전화하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상표법 강사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의도치 않게 지금까지 상표/디자인으로 먹고살고 있다. 보통 합격하고 나서 한빛 학원 설명회 때에 도는 이력서 자료를 보고 화학/바이오 관련 연락이 많이 왔다. 하지만 초과 학기를 다녀야 해서 합격한 시즌에 곧바로 취업은 생각하지 않고 1년 놀고 다음 해에 취업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학원에서 상표법 강의도 하게 되었다. 학원에 유기화학, 상표법으로 둘 다 지원했는데 상표법으로 뽑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에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때 강의 자료를 보면 참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때가 가장 열정 넘치던 때였다. 수험생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계속 상표법 강사 생활을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위기는 있었다. 강사 생활 1~2년 차까지는 가르치는 게 즐거운 시기다. 합격 뽕도 있고, 당장 1-2년 차 급여 외에 추가로 돈을 벌 수 있으니 재밌게 강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년 차가 되면서 변리사로서 능력치가 올라갔고,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실무 처리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더라. 주말에 시간을 내기도 어렵고, 자료를 만들기도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회비용이 생각났다. 경제적인 것만 보자면 강의보다 다른 걸 하는 게 더 좋다. 신규 강사가 몇 년 하다가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항상 같은 시기에 같은 커리큘럼으로 강의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것 같다.
그런데도 강사를 계속하는 이유는, 이 일이 너무 재밌어서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내가 배운 것, 내가 가진 것을 제공하는 게 즐겁다. 수험생들이 내가 가르쳐준 걸 이해하고 눈이 또롱또롱할 때에 드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합격하고 나서 감사하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연락해주신 분들 한 명 한 명 다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합격하고 나서는 아무래도 수험생 때만큼 열심히 공부할 수는 없지 않나. 상표 강사를 하면서 개정법과 판례를 계속해서 배울 수 있다는 건 변리사로서도 매우 좋은 점이다.
김앤장에서 상표 변리사로 일을 시작하신 이유가 있나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보통 연말에 취업하지 않나. 그래서 1학기에 졸업하고, 연말이 되기 전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데 6월에 김앤장에서 상표 변리사 공고가 올라와 지원했는데, 운이 좋아 그대로 붙어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화학/바이오 전공인데도 상표/디자인을 택한 이유는, 김앤장을 가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상표, 디자인이 특허보다 더 재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 세상에 조금 더 관여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앤장에서 일하는 건 어떠셨나요?
재밌으면서도 힘들었다. 김앤장 상표팀에 입사하게 되면 출원, OA보다도 심판/소송 업무를 맡게 된다. 다른 동기들 대비 정말 많은 서면을 쓰고, 판례도 많이 찾아보고, 경험도 쌓게 되어 성장하는 게 느껴진다. 그뿐만 아니라, 상표, 디자인, 부경법, 저작권법, 특허청 특사경, 변호사 협업 등 다른 곳에서 하지 못할 다양한 업무를 해볼 수 있어서 정말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하지만 정말 힘들었다. 나는 원래 조직 생활에 잘 맞지는 않는 사람이다. 규칙에 구속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김앤장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외부 활동이나, 사이드잡 등. 김앤장에서는 모든 인생을 김앤장에 걸어야 하더라. 이때 강의도 잠깐 중단하게 됐다.
평일에도 늦게 퇴근하고, 주말에도 자주 출근했다. 잠을 잘 때에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까 봐 불을 켜고 잤다. 어느 날은 소송 업무 때문에 새벽 매우 늦게 퇴근한 적이 있는데, 그때 퇴사를 결심했다. 김앤장을 다니는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고, 많은 걸 배웠다. 퇴사가 후회되지는 않는다.
김앤장을 그만두신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김앤장에서 계속 있으면 상표만 해도 되지만, 김앤장을 나간다면 여러 일을 할 줄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상표/디자인도 하면서 특허도 할 수 있는 사무소를 찾게 됐다. 큰 사무소는 정해진 좁은 일을 깊게 배울 수 있다면, 작은 사무소는 여러 일을 경험할 수 있더라. 상표로 시작한 커리어를 넓힐 기회였다.
퇴사하면서 상표법 강의도 다시 시작했다. 강의는 여전히 너무 즐겁더라. 나는 강의나 교육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았고,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 남는 시간에 재테크도 공부하고 여행도 다녔다.
PT/운동에도 많이 투자했다. 그때 SNS에 올렸던 사진들 보면 참 재밌었던 것 같다. 달리기/등산도 많이 하고, 자전거도 많이 탔다. 지금은 완전히 일에 찌들고 퍼져서 운동을 그만두고 있는데, 다시 건강을 되찾기 위해 PT를 받을 예정이다. 업무가 줄어서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너무 좋은 시기였다.
자신에게 어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먼저 변리사 얘기를 해보면, 변리사 업무는 크게 3가지, 영업과 실무, 그리고 운영으로 나뉜다고 본다. 나는 이 세 가지 중에 실무가 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변리사 본연의 업무여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실무를 잘하려면 계속해서 공부하고 정리해야 한다. 이런 작업에서 심리적인 거부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대리인으로서 고객에게 최선을 다한다. 고객이 요청하면 밤을 새우더라도 하여야 한다는 주의이다. 본가에 내려가는 와중에 다음 날까지 해야 하는 작업을 받았다. 본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작업해서 새벽 4시에 보고 하고 그대로 잔 적이 있다.
강사로서는, 필요한 자질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전달력만큼은 좋은 것 같다. 실제 실무를 해보기도 했고, 판례나 서면 작성에 익숙하다 보니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계속 생각한다.
변리사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즐거운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었나요?
고객을 기쁘게 해줬던 일이 즐거운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김앤장에 입사하고 나서 처음으로 맡았던 도메인 분쟁 사건이다. 도메인을 무단으로 제3자가 등록받아 이를 바로잡는 사건이었다. 그거 말고도 소니 “a(알파)” 상표의 사용에 의한 식별력 취득 사건, LEGO 사건으로 오프라인 가품 시장을 돌아본 게 기억에 남는다. 모두 선배님들의 가르침 덕분에 좋은 결과를 냈다.
반대로, 어려움도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안겨주지 못할 때. 거절되거나 패소할 때다. 고객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데 심적으로 어렵더라. 연차가 쌓이고 많은 일을 겪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변리사로서 업무의 어느 단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실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업을 하든, 운영을 하든, 결국은 실무가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어느 곳에서든 변리사의 기본을 지킬 수 있다. 개업을 하든, 고용변리사가 되든, 인하우스를 가든 기본적인 실무가 되어야 변리사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변리사로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포트폴리오가 있나요?
김앤장에서 배웠던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블리자드나 소니, 레고, 에르메스, 샤넬, LG 디스플레이, 현대기아차 등 여러 분야의 다양한 고객의 일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실력 있는 선배들의 업무 처리 능력과 지휘, 서면 작업, 심판/소송 실무를 배웠다.
다음으로는 지금 당장의 내 일이 가장 중요한 포트폴리오로 생각된다. 인사/관리, 회계/세무, 영업/마케팅, 실무 등 가리지 않고 회사를 운영하는 전반에 대해서 수행 중에 있다. 저년차 때에는 실무가 중요하겠지만, 점차 연차가 쌓이고 개업, 인하우스, 큰 펌 내에서 팀장이나 파트너가 되면 밑에 사람을 두게 되고 관리자의 포지션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개업이나 파트너를 꿈꾸는 분들에게는 회사 전반을 운영한다는 게 아주 큰 자산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표법 강사로서 지금까지 활동한 것과 강의를 위해 만든 자료들이 나의 소중한 자산이다. 비록 졸작이지만 내 이름으로 책도 내봤고, 수험가든 일반인이든 간에 많은 강의를 하면서 만든 자료, 알게 된 사람들은 다른 변리사에 비해서 강점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예정인가요?
변리사로서는, 먼저 소위 “리딩케이스” 판례를 만들어보고 싶다. 상표 판례를 공부하다 보면 알파 사건, 입체 고관절용 볼 사건처럼 리딩 케이스가 있더라. 판결문에 변리사로서 이름 하나를 남기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현재 소속된 회사의 운영 및 경영 전반을 잘 처리해서 안정적인 회사로 만들고 싶다.
다음으로는 나 스스로 좀 더 채울 수 있는 일이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다. 아무래도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공부한 것, 그리고 회사 다니면서 보고 배우고 한 것들이 내 전 재산이지 않나? 하지만 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나 자신의 것을 쌓아 올리고 배우고 채우는 것을 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소모하는 일을 한 것 같다. 고객을 대하고, 강의를 하는 것 모두가 내가 배운 것을 쏟아내기 바쁜 일이지 않나.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밑천이 다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전에 얼른 나도 새로 배우고 채울 수 있는 일(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원이든 독학이든 뭐든 고민 중이다.
변리사 외의 일로는 정말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싶다. 창업도 생각 중이고,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통한 콘텐츠 제작도 관심을 두고 있다. 아무래도 변리사로 일하다 보니 주변에 사업가, 스타트업, 대표들이 많아서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무언가를 계획하고 이뤄내는 게 참 멋져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성공해서(성공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사회 곳곳의 어려움이 있는 곳에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러 사람이 도움을 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나에게 장학금을 주신 분, 내가 이렇게 강의를 할 수 있게 해주신 학원 관계자님들 등 내 의지, 내 능력만으로 지금처럼 된 건 아니라고 본다. 우리 사회 어려운 곳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 헌혈 100회 달성, 불우 이웃 성금, 봉사활동, 미혼모 돕기, 위안부 할머니 돕기 등등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
강의를 하고 싶어하는 58기에게 조언해주실 수 있나요?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합격 이후에 강의하고 싶다면 꼭 해봤으면 좋겠다. 해보고 강의가 안 맞으면 그만두면 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한번 경험해보면 좋다. 다만 이왕 시작하게 된다면, 안일하게 강의를 준비하면 안 된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야 한다. 수험생은 인생을 걸고 듣는 거니까 진지하게 임해봤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58기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정말 부득이하게 당장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니라면, 마이너스 통장이 나오면 견문을 넓히는 일에 썼으면 좋겠다. 외국 여행이라든지, 외국 여행이 어려우면 국내 여행이라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변리사의 기본은 실무다. 실무 능력을 키우고 가꾸는 데에 1-2년 올인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누구와 함께 하는 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라고 해서 무조건 다 되는 건 아니니, 1-2년차 때에는 닥치는대로 배웠으면 좋겠다.
큰 회사를 가게 되면 팀 별로 나눠서 일을 할텐데,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적극 건의도 해보시라. 작은 회사를 가게 되면 오로지 한 분야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되는 데, 이 또한 큰 자산이 된다. 면접 때에 어떤 일을 하는 지, 사수는 누구인지, 어떤 고객의 일을 하는지 등등 구체적으로 물어보면서 그림을 잘 그려나가는 게 좋다.
뿐만 아니라, 변리사가 단순히 출원, 심판, 소송만 하는 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김형준 변리사가 하는 것처럼 BLSN같은 커뮤니티를 운영할 수도 있지 않나. 금융을 좋아하면 VC가 될 수도 있다. 사업을 하거나, 학계로 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그 외에도 법제처, 입법조사, 해외 로펌 등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다.
변리사 자격증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디딤돌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기본기를 위해 특허 사무소에서 저년차를 보낼 필요는 있다. 하지만 그건 많은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경험해보고 변리사가 안 맞으면, 또는 지금 다니는 회사가 안 맞으면, 그만두고 다른 거 해라. 다양한 경험을 해라.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니까 하나의 일에 너무 본인을 가둬두지 않으면 좋겠다. 본인이 특허한다고 해서 상표, 디자인을 척지지 말고, 상표, 디자인한다고 특허를 척지지 마라. 선택지가 너무 좁아진다. 우리는 충분히 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다 모르는 과목인데 공부해서 시험을 치고 합격하지 않았나. 항상 마음을 열고, 뭐든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