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별] 김두규, 대한변리사회 제43대 회장

관리자,  5월 3일 8시 59분,  조회 498,   추천 32



어떤 변리사가 될 것인가? 12
김두규, 제43대 대한변리사회 회장

약력
94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졸업
98 변리사 시험 합격, 35회
99~00 중앙 특허법률사무소
00~04 리인터내셔널 특허법률사무소
04~07 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
07~11 Kang IP Law, LLC (미국 IP 부티크 로펌)
11~14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 법학대학원 지재권법 강사
14~17 특허법인 우인, 파트너 변리사
17~ HP, Senior IP Counsel
24~ 대한변리사회 43대 회장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변리사회 43대 회장 김두규다. 현재 HP 지재법무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출원 제외한 IP 업무를 했다. 회장이 된 이후로 업무 상당부분을 이관하고, 회장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어쩌다 변리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대학교 선배 기숙사에 놀러갔다가 변리사 수험서를 봤다. 그때 변리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됐다. 변리사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군제대 이틀 전이다. 제대하고 나서 뭘 할지 고민했었다. 나는 90학번이다. 당시에는 취업이 쉬운 시기였다. 그냥 취업하는 것보다는 이공계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변리사 공부를 시작했다.

제대하자마자 경북 영주 집에 짐을 두고, 서울로 상경했다. 거처가 없어서 친구 자취방에 이불 하나 놓고 생활했다. 서울에 종로서적이라는 큰 서점에 가서 변리사 수험서적을 찾아봤다. 책을 보니 한빛 학원이 만든 책이 많더라. 책에 적힌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상담을 받았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다.

수험생활은 어떠셨나요?
군대 제대하자마자 시작한 거라, 열심히 공부했다. 군기가 잡힌 상태였나보다. 당시에 모아둔 돈이 300만 원 정도 있었다. 학원 바로 옆 고시원을 잡았다. 월세가 5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관이랑 비슷한 크기였다. 공부할 때는 의자에 앉아서 하다가, 잘 때는 의자를 책상에 올려야 누울 수 있는 크기였다. 공부 내용 자체는 문제 없었다. 당시 내가 밥을 많이 먹는 편이었는데, 돈을 아끼느라 배고프게 공부했다. 누가 돈을 지원해주면서 공부만 하라고 했다면 공부하는 게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1차 시험을 4개월 준비해서 합격했다. 2차는 첫해 그냥 시험삼아 봤고, 1년 정도 공부해서 다음해 합격했으니, 1년 4개월 정도 공부한 셈이다. 당시에는 필수과목이 민사소송법, 특허법, 상표법, 의장법(디자인보호법) 4개였다. 선택과목은 2개 골라야 했다. 기계과 전공이라서 고민 없이 열역학과 기계설계를 골랐다.

첫 커리어 시작은 어떠셨나요?
중앙 특허법률사무소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사무소가 많아져서 위상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중앙이 국내에서 가장 크고 선호하는 사무소였다. 해외에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 사무소였다. 나도 중앙에 지원해서 수습을 시작했다. 인커밍 업무였다. 외국 명세서를 번역하고, OA 대응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고객사는 소니를 주로 담당했다.

이후에 리인터내셔널 특허법률사무소로 이직하셨습니다.
중앙에서 1년 3개월 정도 일하고 이직했다. 수습을 마치고 나니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더라. 많이들 이때쯤 이직을 고민하는 때다. 하다보면 사무소마다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알게 돼지만, 당시에는 다를 것 같더라. 그래서 리인터내셔널로 이직했다. 리인터내셔널도 인커밍 회사여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다.

다른 변리사들도 마찬가지일텐데, 일본 일을 하다보면 일본어 공부, 일본 유학을 꿈꾸게 되고, 미국 일을 하다보면 영어 공부,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된다. 와이프도 당시 리인터내셔널에 근무하던 변리사였는데, 같이 미국 유학을 준비했다. 리인터내셔널에서 4년 정도 다니다가, 사표를 내고 와이프와 함께 미국 유학을 갔다.

미국 유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당시에 첫째 아이가 돌이었다. 아기와 함께 미국에 가니 쉽지 않더라. 와이프도 같이 로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같이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애도 보고 공부도 해야했다. 공부만 하기도 힘든데 쉽지 않더라. 와이프와 아이도 고생이 많았다. 사실 원래는 1-2년 정도 짧게 유학하고 돌아올 예정이었는데, 어쩌다보니 7년 정도 미국에서 지내게 됐다.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대학에서 LLM을 1년 간 했다. 원래는 이것만 하고 한국에 돌아가려고 했다. 당시에 LLM 과정을 듣는 학생이 50명 정도였다. 당시 LLM 졸업 4등 이내인 학생들에게 JD를 하면 장학금과 무이자 대출을 줬는데, 어쩌다보니 운좋게 와이프와 나 둘다 해당되어 혜택을 받고 JD까지 하게 됐다.

졸업후 미주리 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작은 IP 부티크에 다녔다. 로스쿨 객원 교수님이 대형 로펌 IP 팀장으로 일하다가 개업하셨다. 합류해서 같이 일하자고 하시더라.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 특허로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라, 합류했다. 여기서 3년 반 일했다.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왜 한국으로 돌아오셨나요?
한국으로 돌아온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다. 첫 째 아이 돌 때 미국에 갔다. 둘 째 아이는 미국에서 낳았다. 그러다보니, 여기서 계속 살다보면 아이들이 미국인이 될 것 같더라. 내 아이가 부모와 정서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싫었다. 와이프도 같은 생각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셔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한국에 돌아오는 시점에, 헤드헌터를 통해 얘기 되던 기업 CTO 직속 인하우스 포지션이 있었는데, CTO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흐지부지 됐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알아보려 하던 차에 리인터에서 연락을 받고, 심판 소송 업무를 주로 하는 역할로 8개월 정도 일했다.

그러다 서울대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흥미가 생겨 옮겼다. WIPO와 서울대학교의 조인트 MIP 과정 커리큘럼을 짜고, 홍보, 해외학생유치, 면접, 운영 등의 실무와 강의를 맡았다. 학생은 대체로 개발도상국에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학생들이었다. WIPO와 서울대학교가 장학금을 주고 이들을 지원했다. 지금은 다들 자기 국가로 돌아가서 각자 중요한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고, 아직도 가끔 연락 오는 제자들도 있다.

이후 잠시 개업을 하시고, 또 우인에도 다니셨습니다.
후배 변리사와 개업을 했었다. 10개월 정도 운영하다가 잘 안되어 결국 접고, 최성우변리사님이 대표로 계시는 우인에 합류했다. 최성우 변리사님은 미국에서 로스쿨 졸업하고 일하고 있을 때 학교에 오셔서 친분을 쌓았었다.

매월 수익을 결산했는데, 스트레스였다.  

이후 현재까지 다니시는 HP IP 팀에 합류하셨습니다.
당시 HP가 삼성 프린트 사업을 인수했었다. 천 명이 넘는 R&D 인력을 흡수한 거다. 이 즈음 한국에서 나를 포함한 3명의 IP 카운슬을 채용했다.

나는 출원을 제외한 IP 업무를 담당한다. 심판, 소송, 분쟁, 계약, 분석, 전략 등 다양한 업무를 한다. 다른 두 분은 출원을 주로 담당한다. IP 팀은 글로벌 조직이고, 내가 속한 팀은 미국, 유럽, 아시아에 팀원들이 퍼져있다.

그리고 변리사회 활동도 조금씩 시작하셨습니다.
오규환 회장님 시절, 대한변리사회 법제이사를 했었다. 그게 첫 회무 참여였다. 그 이후에 변리사 회무에 잠시 떠나 있다가, 4년 전에 대의원회 부의장, 2년 전에는 의장을 맡았다. HP 근무 중이었고, 소송 업무는 업무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변리사의 소송대리권에 대해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변리사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소송대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현실적으로 불편함을 정말 많이 느낀다. 특허 소송은 변리사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변리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 소비자를 위해서다. 특허 소송을 하려면 수임료가 엄청나게 많이 드는 대형 로펌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소송대리권 법안을 위해 여러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기업 입장을 대변하면서, 국회도 가고, 언론사도 만났다. 소송대리권이 논의되는 자리는 어디든 갔다. 자연스럽게 회무에 참여를 많이 하게 되었다.

결국 대한변리사회 회장이 되셨습니다. 어쩌다 출마하게 돼셨나요?
소송대리권을 위해 지난 집행부와 함께 정말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결국 소송대리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정말 아쉬운 일이다. 누군가는 이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내가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서 권유도 있었다. 주변 환경이 녹록치 않아 많은 난관이 예상되지만, 출마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급하게 선거 캠프를 꾸리고,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아낌없이 지지해주셨다.

이제 막 회장이 되셨는데, 어떤 목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2년 간 임기 동안 최선을 다 하겠다. 어떤 과업 하나를 정해서 꼭 해결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우선순위를 정해보자면… 수임료 정상화와 소송대리권이다. 소송대리권은 소비자와 변리사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임료 정상화는 해결이 안 되면 변리사라는 직역 자체가 망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특허 소송은 변리사가 해야한다. 소송대리권이 변리사에게 생기면 소송 문턱이 낮아진다. 지금처럼 대형로펌이 독과점하는 행태, 특허 소송을 하려면 최소 1~1.5억이 있어야 하는 환경이 개선될 거다. 중소기업들도 특허 소송을 할 수 있게 된다. 비용 때문에 참았던 소송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다. 젊은 변호사, 변리사들에게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거다.

그리고 수임료도 이어서 나아질 거다. 소송 없이 단순히 권리 확보하는데 왜 기업에서 돈을 더 쓰겠나. 실제로 특허가 행사되지 않으면 수임료 올리기 힘들다. 하지만 소송이 늘어나면 말이 달라진다. 특허의 가치가 올라가고 수임료도 함께 오를 거다. 권리행사는 특허가 효용성을 갖는 핵심 조건이다.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이 생기면 특허 권리행사가 늘고, 품질을 따지게 되고, 수임료가 상승할 거다.

회장으로서 변리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으신가요?
회무를 오래 하면서 느낀 점인데, 우리 회가 회원들 동참을 요구할 때 참여율이 높지 않다. 물론 일정부분 이해한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다. 그렇기 때문에 회와 회장에게 권한과 역할을 부여한 거라고 생각한다. 회원들 동참, 참여가 적더라도 최대한 성과를 내보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주면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회비 납부 잘 하고 계시지만 기한 내에 납부 안 하시는 비율이 높다. 가장 기본인 회비 납부를 잘 해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수임료를 정상화하기 위해 회나 회장이 아무리 노력해도, 회원들이 나는 괜찮다면서 수임료를 내려서 제안하면 답이 없다. 수임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변리사 업계는 생존이 끝난다. 공멸이다. 절실한 마음가짐으로 회장이 수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점이므로, 동참해주시면 좋겠다. 함께 나와서 시위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건 알아서 하겠다. 대신 앞에서 소리치는 동안 뒤에서 수임료 후려치지 말아달라. 호응해줘야 한다.

한 편, 과거보다 변리사 업계가 전체적으로 공부/연구를 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지식재산 전문가라는 모습을 널리 보여주면 좋겠다. 기업인들, 법조계, 변호사들은 특허 관련 연구를 하고 적극적으로 발표한다. 어딜 가든 김앤장 변호사들이 발표하고 있다. 변리사가 가장 전문가인데도 불구하고 지재권 관련된 세미나, 발표, 학회에 변리사의 활동이 드물다. 외부에 노출되는 활동을 많이 해달라. 우리가 지식재산 전문가임을 잘 보여달라.

회장 이전에 변리사로서, 선배님은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인하우스 변리사로서 내 장점은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 거다. 다양한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다른 변리사에 비해 좀더 비즈니스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예컨대, 어떤 질문이 왔을 때, 단순히 질문에 법적인 답변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배경과 비즈니스적인 목표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한다. 그런 바탕으로 때로는 법적인, 때로는 비즈니스적인 조언을 한다. 청자 입장에서 잘 이해되고, 설득될 수 있도록 설명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

선배님 기준에서는 어떤 변리사가 좋은 변리사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건 모두가 같은 말을 할 거다. 기본은 명세서다. 좋은 변리사는 기본적으로는 명세서를 잘 써야 한다. 명세서를 쓰지 못 하면서 좋은 변리사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비즈니스와 현실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 특허사무소에 있는 변리사도, 기업에 있는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래서 기업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기업에게는 어떤게 중요한 요소인지, 뭐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인하우스 변리사도 노력해야 한다. 인하우스임에도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가 있다. 문제가 주어지면,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내는 것만을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 특허만이 아닌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넓은 시각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소통이 중요하다. 물어보면 된다. 세상은 시험 치는게 아니다. 왜냐고 물어봐도 된다. 오히려 그래야 한다. 정확하게 원하는 바가 뭔지 질문하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하는 어린 변리사들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내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면 한 회사에 3년 반 이상 있었던 적이 없다. HP에서만 유일하게 7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돌아보니 나는 궁금한 거나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일은 실제로 해야 하는 성격인 것 같다.

우리 모두 변리사이지만, 각자가 가진 기질과 목표가 다를 거다. 각자 원하는 커리어를 쌓아가면 된다. 그리고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쌓으면 된다. 그렇게 각자가 원하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면 된다고 본다.

그럼에도 조언을 하자면, 다시 말해도 기본은 명세서다. 일단 명세서 트레이닝을 꼭 받아야 한다. 명세서를 잘 쓰지 못 하는 변리사는 절대로 실력있는 변리사가 될 수 없다. 기본을 잘 배우고, 이후에 원하는 방향으로 자기발전을 도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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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대리인 , 5월 6일 2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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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한 편, 과거보다 변리사 업계가 전체적으로 공부/연구를 덜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변리사가 가장 전문가인데도 불구하고 지재권 관련된 세미나, 발표, 학회에 변리사의 활동이 드물다.-> 이점에 대해서 너무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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